기원전 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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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49년은 전한 황룡 원년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카이사르 내전을 시작한 해이다. 로마에서는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수스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가 집정관을 역임했다. 주요 사건으로는 카이사르의 코르피니움 포위, 폼페이우스의 에피루스 도망, 마르세이유 공성전, 일레르다 전투, 바그라다스 전투 등이 있었으며, 카이사르는 10월 로마의 독재관으로 임명되었다. 이 해에는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가 태어났고, 한 선제, 아리스토불루스 2세,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루크레티우스 등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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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49년 - 바그라다스강 전투 (기원전 49년)
바그라다스강 전투는 카이사르 내전 중 쿠리오가 폼페이우스 지지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북아프리카로 파견되어 벌어진 전투로, 쿠리오는 사부라가 지휘하는 폼페이우스 군대와 교전했으나 누미디아 기병과 지휘 미숙으로 패배하여 카이사르에게 타격을 주고 폼페이우스 지지 세력의 사기를 높였다.
기원전 49년 | |
---|---|
기원전 1세기 | |
연대 | 기원전 50년대 |
년도 | 기원전 51년 기원전 50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 기원전 46년 |
주요 사건 | |
로마 공화정 |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 내전 발발 |
기타 | 고대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 사망 |
2. 연호
3. 기년
4. 사건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가 카이사르 내전에 돌입했다.[1] 집정관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수스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였다.
1월 1일 로마 상원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동시에 군 지휘권을 내려놓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카이사르에게 즉시 군 지휘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1] 1월 10일 카이사르는 그의 관할권인 갈리아 키살피나를 로마 상원의 관할 지역인 로마와 분리하는 루비콘 강을 넘어 군대를 이끌고 가면서 내전을 시작한다.[1] 원로원은 카이사르에게 "세나투스 콘술투툼 울티무뭄(원로원 최후 권고)을 발한다. 2월 13일 카이사르 군은 코르피니움(현재의 코르피니오)을 포위하여 19일에 함락시켰다.
2월 20일 폼페이우스는 상원 의원 대부분과 함께 에피루스(서그리스에 위치)로 도망쳤다.[1] 3월 9일 카이사르는 스페인에서 폼페이우스 군에 맞서 진격했다. 4월 19일 마르세이유 공성전에서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측의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에 맞서 마르세이유 공성전을 시작하고,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항구를 봉쇄하기 위한 함대를 지휘했다.
6월 카이사르가 스페인에 도착하여 폼페이우스 측의 L. 아프라니우스와 마르쿠스 페트레이우스에 맞서 피레네 산맥을 점령했다. 6월 7일 키케로가 이탈리아를 빠져나와 테살로니키로 갔다. 7월 30일 카이사르는 일레르다에서 아프라니우스와 페트레이우스의 군대를 포위했고, 8월 2일 일레르다의 폼페이우스 군은 카이사르에게 항복하고 사면을 받았다.
8월 24일 카이사르의 장군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가 북아프리카에서 아티우스 바루스와 누미디아의 유바 1세(Juba I of Numidia) 지휘하의 폼페이우스 군에게 바그라다스 전투 후 자살했다.
9월 브루투스가 마르세이유 공성전에서 폼페이우스-마르세이유 연합 해군을 패배시키는 동안, 아드리아 해에 있는 카이사르 함대가 쿠리크타(크르크) 근처에서 패배했다. 9월 6일 카이사르가 스페인에서 돌아오면서 마르세이유가 항복했다. 10월 카이사르는 로마에서 독재관으로 임명되었다.
4. 1. 로마 공화정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가 카이사르 내전에 돌입했다.[1] 집정관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수스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였다.1월 1일 로마 상원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동시에 군 지휘권을 내려놓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카이사르에게 즉시 군 지휘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1] 1월 10일 카이사르는 그의 관할권인 갈리아 키살피나를 로마 상원의 관할 지역인 로마와 분리하는 루비콘 강을 넘어 군대를 이끌고 가면서 내전을 시작한다.[1] 원로원은 카이사르에게 "세나투스 콘술투툼 울티무뭄"(원로원 최후 권고)을 발한다. 2월 13일 카이사르 군은 코르피니움(현재의 코르피니오)을 포위하여 19일에 함락시켰다.
2월 20일 폼페이우스는 상원 의원 대부분과 함께 에피루스(서그리스에 위치)로 도망쳤다.[1] 3월 9일 카이사르는 스페인에서 폼페이우스 군에 맞서 진격했다. 4월 19일 마르세이유 공성전에서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측의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에 맞서 마르세이유 공성전을 시작하고,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항구를 봉쇄하기 위한 함대를 지휘했다.
6월 카이사르가 스페인에 도착하여 폼페이우스 측의 L. 아프라니우스와 마르쿠스 페트레이우스에 맞서 피레네 산맥을 점령했다. 6월 7일 키케로가 이탈리아를 빠져나와 테살로니키로 갔다. 7월 30일 카이사르는 일레르다에서 아프라니우스와 페트레이우스의 군대를 포위했고, 8월 2일 일레르다의 폼페이우스 군은 카이사르에게 항복하고 사면을 받았다.
8월 24일 카이사르의 장군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가 북아프리카에서 아티우스 바루스와 누미디아의 유바 1세(Juba I of Numidia) 지휘하의 폼페이우스 군에게 바그라다스 전투 후 자살했다.
9월 브루투스가 마르세이유 공성전에서 폼페이우스-마르세이유 연합 해군을 패배시키는 동안, 아드리아 해에 있는 카이사르 함대가 쿠리크타(크르크) 근처에서 패배했다. 9월 6일 카이사르가 스페인에서 돌아오면서 마르세이유가 항복했다. 10월 카이사르는 로마에서 독재관으로 임명되었다.
4. 2. 동아시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가 카이사르 내전에 돌입했다.5. 탄생
-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로마 집정관 (25년 사망)
Category:기원전 49년 출생
6. 사망
- 1월 10일 - 한나라의 황제 선제가 사망했다.(생년 기원전 91년)
- 아리스토불루스 2세가 사망했다. 그는 유대의 왕이자 대제사장이었다.
- 가이우스 멤미우스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로마의 웅변가이자 시인이었다.
- 8월 24일 - 로마 공화정의 정치가이자 군인인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가 사망했다. (생년 기원전 90년)
- 제유 공주가 사망했다. 그녀는 한나라의 공주였다.(생년 기원전 121년)
- 마르쿠스 페르페르나가 사망했다. 그는 로마의 정치가였다.
- 정기가 사망했다. 그는 한나라의 장군이었다.
- 루크레티우스가 사망했다. 그는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였다.(생년 기원전 99년)
참조
[1]
서적
A History of Rome
Blackwell
[2]
문서
혁거세 거서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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